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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두 얼굴

2008/09/16 11:29 from Text
문혁이 발동한 지 10년 뒤인 1976년 4월 5일, 천안문 사건이 일어났다.
100만명이 넘는 민중이 천안문광장을 가득 메우고 저우언라이 총리의 죽음을 애도한 것은, 위대한 영수 마오쩌둥에 대해 처음으로 거부를 선언한 것이었다.
이 4.5천안문 사건은 중국 역사의 전환점이 된 중대한 사건이었다. 또한 이 사건을 일으킨 제 3세대가 중국 사회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음을 상징하는 정치적 사건이기도 하였다.
제3세대 문학청년과 정치 활동가들은 스스로를 4.5청년이라 불렀고 자신들이 각성하게 된 것을 널리 선언했다. 여기서 당시 광장에 쓰여진 '나는 믿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시문을 소개한다.

나는 믿지 않는다.
비열함은 비열한 자의 통행증이고,
고상함은 고상한 자의 묘지명이다.

1970년대 후반 문혁이 종결됐다. 4.5천안문 사건은 명예가 회복되었다. 하방청년들은 차례차례 베이징으로 돌아왔고, 조금도 주점함없이 당당하게 중국정치와 문화의 무대에 올랐다.
문화대혁명 시기 베이징 청년 상당수는 북대황이라 불리는 헤이룽장성의 황무지로 하방되었다. 그로부터 20년 뒤 그들은 혼은 검은 대지를-북대황청년지식인 회고전을 개최하였다. 이 전시회는 제3세대가 1970년대의 하방 지식 청년 문화와 1980년대의 청년 지식인 문화를 회고하고 이별을 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일요일의 천안문 광장은 제3세대의 에너지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만약 망각이 어떤 철학이라면, 회고는 곧 책임이다.

제3세대는 19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년대에 들어서도 결코 간단히 쓸 수 없는 상상을 뛰어 넘는 경험들을 남겼다. '잘못은 있을지나,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들이 쓴 회고전의 홍보문구는 엄청난 역사의 무게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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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nzzo 트랙백 0 : 댓글 0